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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123, Date : 2018년 12월 17일 오전 9시 39분 27초
  제목 [기고] 공감, 영혼의 숨쉬기(권수영 교수)
  글쓴이 관리자 (yccc@yonsei.ac.kr)
기사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142044005&code=990100
(위 주소를 복사하여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하시면 기사원문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고] 공감, 영혼의 숨쉬기(권수영 교수)
 
  “숨 쉬는 게 이렇게 중요한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목에 못된 장치를 달고 힘겹게 숨을 쉬어대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ㄱ양 엄마가 울먹이며 한 말이다. ㄱ양은 태어날 때부터 천식이 심해 병원 출입이 잦았다. 가습기를 늘 달고 살아야 했다. 남들보다 부지런한 오지랖 엄마는 가습기 살균제라는 ‘요물’에 홀리고야 말았다. 결국 엄마는 천하의 죄인으로 전락했다. 

  나는 작년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발주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심리상담’ 사업의 연구책임자로 ㄱ양처럼 기존 병력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 보상에서 제외된 850여명을 상담하는 일을 진행했다. 어린 자녀를 위해 요물을 구입하고, 노파심에 제시된 용량보다 더 많이 사용했던 ㄱ양 엄마는 자신을 ‘미친년’이라고 불렀다.

  이 사업을 맡아 진행하기 전까지 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왜 ‘안방의 세월호’라고 부르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기 전, 가지 않겠다는 자녀를 억지로 수학여행 보냈던 몇몇 엄마들은 무너진 가슴을 쥐어뜯었다.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한 모든 엄마들은 이처럼 자신의 피 같은 아이를 세월호에 떠밀어 태웠던 엄마 같은 마음일 수밖에 없다. 남들은 구태여 사지 않았던 그 요물을 애써 구입한 대역죄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억장 무너지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진짜 미칠 노릇은 결국 자녀를 잃은 유가족 부모를 만나는 일이다. 요물을 열정적으로 사용했던 엄마는 자신을 ‘자식 죽인 년’으로 불렀다. 이런 엄마를 상담하다 보면, 상담사는 체한 것같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엄마가 죽지 않고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고맙다. 제대로 훈련을 받은 상담사라면 “그래도 엄마가 기운을 차려야지요. 큰애가 있잖아요”라는 값싼 위로를 도저히 건넬 수가 없다. 그저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함께 부여잡고 있을 뿐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후, 둘째 아이를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낸 엄마가 상담을 받았다. 그는 벌써 몇 년이 훌쩍 지났지만, 밥을 제대로 넘길 수가 없었다. 남편과 큰아이를 위해 아무리 맛난 밥상을 차려도 자신은 도무지 입에 댈 수가 없다. 최고의 식재료를 사용해도, 식감이 아무리 부드러워도, 냄새가 하늘을 찔러도 당최 맛이 없다. TV를 틀기만 하면 나오는 군침 나는 먹방도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자신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상담사에게 푸념했다. 

  상담사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어떻게 밥을 먹겠어요? 어떻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는 토끼 눈을 뜨고 상담사를 바라보았다. 몇 초 되지 않아 그 엄마는 마치 몇 년 동안 참아온 것 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두 사람은 상담실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다. 다행히 방 안에는 눈치 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그만 울라고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한참을 울던 엄마는 상담사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이렇게 말해준 사람이 상담사 선생님이 처음이에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리고 가족들까지 제발 밥 좀 먹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물론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보약이라도 먹으라는 친정어머니도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면, 엄마는 가슴이 막혀 숨이 가빠진다. 자신은 살균제 피해를 입지도 않았는데,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자신이 여태 살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정신분석가 하인즈 코헛은 인간이란 종족은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특별한 산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산소가 없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생존하는 것보다, 남들과 공감할 수 없는 심리적인 공간에서 생존하는 것이 훨씬 힘들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심리적인 산소’는 바로 공감(共感)이라고 요약했다. 

  공감받지 않으면 인간은 죽은 목숨이다. 코로 숨 쉬는 것은 문제없는데, ‘영혼의 숨’을 쉴 수가 없다. 제발 밥 좀 먹으라는 말을 듣고 나면 가슴이 꽉 막힌 듯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이유다.

  연일 극성인 미세먼지는 이제 모두가 숨 쉬기 힘든 세상을 만들었다. ‘남들 이야기’로만 여겼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정도로는 숨쉬기의 중요성을 잘 몰랐던 국민 모두가 이제 숨 쉬는 것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코로 숨 쉬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공감으로 ‘영혼의 숨’을 쉬는 일이다. 이를 위해 상담전문가들은 반드시 상담진흥법이 필요하다고 줄기차게 외치고 있다. 나 같은 일개 교수 나부랭이가 외치는 소리는 언제쯤 입법자들의 공감을 얻게 될까? 자꾸만 가슴이 답답해진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상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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