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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318, Date : 2019년 3월 11일 오전 10시 32분 39초
  제목 [기고] 진정한 ‘멘탈 갑’으로 살아가려면 (권수영 교수)
  글쓴이 관리자 (yccc@yonsei.ac.kr)
기사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3082107005&code=990100#csidx87dc7ae1b524efeb9522496ea7e7a6f
(위 주소를 복사하여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하시면 기사원문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고] 진정한 ‘멘탈 갑’으로 살아가려면 (권수영 교수)


  미국 유학 시절 난 어려운 형편에도 중고차를 구입하기로 했다. 잔고장이 없다며 주위 유학생들이 한결같이 추천한 일본산 대신 국산 중고차를 고집했다. 같은 대학원 수업을 듣던 일본인 존이 자꾸 내 옆자리에 앉으려 했지만, 난 그를 벌레 보듯 했다. 존이 수업시간에 예리한 질문을 할 때면 괜스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유학 초기 종교사회학을 전공하려던 계획을 바꿔 종교심리와 상담학 공부를 시작할 무렵 난 정신분석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 날 분석가는 나의 반일 감정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나는 백인 분석가에게 과거 일제강점기 민족수난의 역사를 목 놓아 강변했다. 빙그레 웃던 분석가는 내가 안팎으로 나눠 써야 할 에너지를 모두 밖으로만 투사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존과의 관계를 예로 들었다. 재미 일본인 3세인 존은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고, 교수와 미국인 친구 사이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분석가는 내가 내면의 견디기 힘든 불안을 숨기기 위해 미움과 분노로 방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신분석을 통해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에 3대 독자를 유학 보낸 가족의 기대를 충족지 못할까 두려워 떨고 있는 나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불안할수록 나는 내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고 자꾸 외부에 비난할 적수를 만들어 분노의 화살을 쏟아부었는지도 모른다. 불안할수록 우리의 ‘멘탈’ 에너지는 밖으로 향하는 원심력에 의존한다. 불안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안으로 향하는 구심력을 가지고 내면을 성찰할 수 있다. 불안을 인정하고 나서야 나는 마음의 에너지를 내 자신을 돌아보는 데도 조금씩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3·1운동 발발 100년을 맞았다. 사람들은 칼과 총 대신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로 나섰다. 격한 원심력을 가진 집단적인 분노 표출과는 격을 달리했다. 일제 타도를 외치는 대신 놀랍게도 구심력을 가진 자아 성찰이 우선되었다. 이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남녀노소 모두는 식민 백성의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밖으로 폭력과 혐오를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주독립 백성으로의 당당한 존재감으로 가득 찼다. 식민통치로 인해 국적과 자국 언어마저 빼앗긴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과 영혼만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멘탈 갑’의 초연함이 돋보인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모두의 멘탈과 비교한다면 어떠할까?

  우리 사회에 갑질을 일삼는 사람들은 이미 ‘멘탈 갑’이 아니다. 실은 부실한 존재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부적절감으로 가득 찬 불안한 영혼에 불과하다. 자신의 불안을 감출수록 비상식적인 공격의 화살을 밖으로 쏘아댈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 세대 간 갈등, 서로를 향한 분노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구심력을 가지고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는 황색 신호등 역할을 한다. 모두가 격한 분노를 급정거할 수 없다면 서서히 그 속도라도 줄여야 한다. 

  고속 경제성장이 우리의 민족적 자존감을 어느 정도 높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열경쟁은 우리 마음의 평정심을 송두리째 빼앗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위장하기 위해 공격적 에너지를 다른 세대와 다른 지역, 다른 정당과 다른 이념에 과도하게 쏟아붓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할 때다.

  서구의 가족상담 전문가들은 구성원들이 가족관계 안에서 가장 건강하게 독립하는 상태를 ‘분화’(differentiation)라 불렀다. 이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상대를 끊어내는 ‘단절’과 전혀 격이 다르다. 분화란 부모와 나, 타인과 나는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들과 연결된 독립체로 ‘따로 또 같이’ 사는 상태다. 가족상담에서 가족이 문제 있다고 지목하는 구성원은 주로 과격한 분노를 표출하고 과잉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자꾸 단절로 치닫는 이들은 실은 가족 중 가장 불안한 사람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 모두가 그에게 잠재된 불안을 이해하고 공감하면 적대감과 분노행동은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고 가족과 연대감을 회복하게 된다. 

  대한민국이라는 운명공동체엔 없어져야 할 구성원도, 불필요한 세대도 없다. 이해받지 못하는 불안감을 피해 자꾸 밖으로 분노의 화살을 당길 수밖에 없는 마음의 단순회로가 문제일 뿐이다. 극한 대립과 갈등이 난무할수록 그 안에 잠재된 모두의 불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단절이 아닌 분화된 구성원으로 함께 연대할 수 있다. 나와 다른 타인을 무조건 비난하고 공격해야만 내가 존재한다면, 결코 ‘멘탈 갑’으로 살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결코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기미독립선언처럼 다시 자신을 돌아볼 수만 있다면, 무한경쟁으로 빼앗긴 우리 마음에도 봄이 오지 않을까?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상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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