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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282, Date : 2019년 4월 9일 오전 10시 37분 45초
  제목 [기고] 힐링의 반전, 슬프지 아니한가 (권수영 교수)
  글쓴이 관리자 (yccc@yonsei.ac.kr)
기사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4052047015&code=990100
(위 주소를 복사하여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하시면 기사원문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고] 힐링의 반전, 슬프지 아니한가 (권수영 교수) 


  그날은 내 인생 최악의 날 같았다. 아내와 딸이 잠든 걸 확인한 후 난 조용히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돈으로 구입해서 부모님께 보내려 했던 항공기 예약서류를 바라보았다. 유학 온 지 5년 만이었다. 아버지는 생전 처음 미국을 방문하여 아들의 대학원 졸업식에 참석하고, 손녀의 백일잔치도 함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지셨고, 미국 방문은 취소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첫 직장을 얻어 영주권을 신청 중이었던 나는 법적으로 미국 땅을 떠나 아버지를 만나러 갈 수도 없었다. 가슴이 무너졌다. 갑자기 속에서 뭔가 끓는 소리가 났다. 거위가 우는 소리 같았다. 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인기척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나를 내려다보며 눈물짓는 아내와 엄마 품에 안겨 영문도 모른 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딸아이가 보였다. 순간 나는 어린아이처럼 참았던 울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어른이 되면 우리는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울 수 없다. 대부분 남성에게 공개적인 울음은 꽤나 숨기고픈 일이다. 2015년 디즈니 픽사가 제작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5가지 감정들이 배우로 등장한다. 기쁨, 슬픔, 까칠, 버럭, 소심 등이다. 영화 제목처럼 우리 내면에는 이런 감정들이 서로 티격태격 줄다리기를 하고 있음을 밖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겠다는 게 제작자의 의도다. 영화는 묘한 반전 스토리를 담고 있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영화 내내 기를 못 펴는 엑스트라로 등장하다가, 맨 마지막 장면에 가면 가장 주목받는 주연배우로 등극한다. 기쁨 못지않게 슬픔도 중요한 감정이란 게 영화의 결론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나갈 때의 일이다. 한 방송사의 추모 생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했다. 난 극적으로 구출된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애도 과정에 대해 언급했다. 그들은 모두 의료진의 보호 아래 외부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다. 한 달 전만 해도 한 교실에서 떠들고 놀던 친구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희생된 친구들을 위한 합동분향소가 차려졌다. 그러나 생존학생들의 분향소 방문은 불허됐다. 이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더 큰 불상사가 생길까봐 내려진 조치였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더 큰 소리를 내고 울어야 하는 이들이 바로 생존한 친구들이었다. 이들이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의료진 혹은 국가의 몫이었다. 다행히 함께 출연한 정신의학과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며칠 뒤 생존학생들의 분향소 방문이 허락되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유가족들은 울 틈도 없었다. ‘자식 팔아 한몫 챙기는 부모’라는 말까지 들었다. 함께 울 사람이 없어 독방에서 천막에서 홀로 우는 이들에게 슬픔은 가슴을 찢는 고통이 된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가족과 이웃과 함께 우는 울음, 혼자가 아니라며 함께 부둥켜안고 흘리는 눈물은 전혀 다른 기능을 한다. 희한하게도 눈물은 슬플 때만 나지 않는다. 가끔은 벅찬 감동으로 눈물이 나지 않는가. 때로 결코 혼자가 아니란 연대감이 느껴질 때 뜨거운 눈물이 나지 않는가. 도대체 이런 눈물은 어떻게 다른 걸까? 어떻게 흘리는 눈물이어야 치유와 위안이 선물처럼 찾아오는 걸까?

  샌프란시스코 정신분석연구소를 만든 조지프 와이스(Joseph Weiss)는 1952년 쓴 짧은 글을 통해 슬픔의 정신역동에 대한 이론가로 주목받았다. 그는 ‘해피엔딩에서의 울음’이란 글에서 자신의 할머니가 영화의 비극적인 장면이 나올 때는 눈물을 꾹 참고 있다가,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끝날 때 안도감을 느끼면서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분석했다. 결국 그는 울음이란 ‘안전감의 조건’(conditions of safety)이 제공될 때 비로소 제대로 터져 나온다고 주장한다. 우는 아이에게 왜 우냐고 따져 물어선 안된다. 가족이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우리 가정은 그래도 안전한 환경이라는 의미다.
  
  우리 사회는 점점 관계의 상실감을 경험하는 이들이 늘어간다. 가족 중에서도 안전한 대상이 없어서 반려동물과의 애착이 훨씬 안전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가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홀로 어두운 곳에서 뼈아픈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살피는 동시에 ‘안전감의 조건’을 제공하여 함께 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 광화문 세월호 천막을 대신해 함께 애도할 수 있는 안전한 치유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국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늘 안전하게 상담 전문가를 만나 숨겨진 상처를 내려놓고 마음껏 울 수 있는 힐링의 나라에 살고 싶다. 맛집 탐방이나 순례 여행을 떠나야만 힐링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안전하게 울 수 있는 환경이 힐링 사회를 만든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상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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